여원무
도천산성에 기거하며 자인현 주민들을 괴롭히던 왜구들을 산 아래의 버들못(柳堤)으로 유인하기 위해 한장군이 그의 누이와 함께 꾸며낸 춤을 여원무라 한다. 읍지에 의병을 일으킨 하나의 수단으로 평가한 것을 보면 많은 인원이 동원된 독특한 놀이판이 었음을 알 수 있다.
한장군이 왜구를 유인할 때는 야생화로 높이 3m의 거대한 화관을 만들어 고ㄱ대기를 연꽃으로 장식하고, 화관가에 오색 종이를 드리웠는데, 자인 단오제에서는 시작때부터 조화를 사용했다고 전한다. 한장군은 여장을 하고 그의 누이와 같이 각자의 화관을 들고 춤추었고, 주위에는 배우로 가장한 주민들이 잡희(雜戱)를 꾸몄는데, 이 화관무와 배우잡희가 현존되고 있는 여원무와 자인 팔광대의 전신이다.
놀이판을 구경하느라 왜구들이 넔이 빠졌을 때 한장군과 주민들이 칼로 쳐 섬멸하였다니 상세한 기록은 없어도 춤의 신기함과 흥의 정도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 작전을 꾸민 한장군은 무(武)와 예(藝)를 겸비한 사람이며 여원무와 배우잡희는 한장군의 지략과 구민의 충정이 응집된 것이다.
특히, 한장군놀이 전, 여원무에 사용하는 여원화에는 접근하지 않았고, 이 놀이가 끝나는 파장에 가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꽃송이를 따가기에 혈안이 된다고 한다. 이 꽃송이를 몸에 품고 가서 집에 두면 풍년, 제액, 치병 등의 효험이 있다는 믿음에서다. 결국 마지막에는 도리깨로 타작하여 여원화는 완전히 형식마저 없어진다는 것이다.
여원무는 제 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69)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자료제공 : (사)경산자인단오제 보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