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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의 지명 유래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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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경산문화원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경산의 지명 유래

경산시(慶山市)
경산은 삼한(三韓)시대에 본디 압량(押梁) 또는 압독소국(押督小國)이었는데 신라의 파사왕(婆娑王) 23년(102)에 합병되었고, 선덕여왕 11년에 신라의 한주(州)가 된다. 처음 군주(軍主)는 김유신 장군이었다.

신라 35대 경덕왕 17년(757)에 다시 장사군(獐山郡)으로 고쳐 장산군 읍내면이라고 부르다가 고려 태조 23년에 장산현(章山縣)으로 하여 경주에 속하게 된다.

그러다가 고려 충선왕(忠宣王) 2년에 경산현으로 다시 바뀐다. 다시 공양왕 3년에 들어 경산군으로 승격을 시킨다.

1395년 조선왕조 태조 4년에 이르러 경산현으로 되돌려 진다. 이어 선조 34년(1601)에 대구에 딸리게 된다.

그뒤 선조 40년(1607) 다시 경산현과 하양현으로 복현이 되기에 이른다. 이어 인조 15년(1637)에 자인현에 복현된다. 그뒤 고종 32년(1895)에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서 각각 군으로 승격이 된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정할 때 경산면으로 불러 오다가 1956년 7월 8일 법률 제 393호에 의하여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9년 1월 1일에 이르러서 시로 된다.

고향의 땅이름같이 그립고 정겨운 게 그리 많이 있을까. 실로 땅이름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갈무리 되어 있다. 하면 우리의 삶터 경산의 속내는 어떠한 것일까.

경산의 땅이름이 바뀌어 온 내력을 간추려 고리를 지으면 \'압량(押梁/押督)\'-장산(章山)-경산\'이된다. 먼저 압량의 량(梁)과 압독의 독(督)은 같은 뜻으로 보인다.

적은 글자는 한자이나 실제로는 우리말을 한자로 적은 이두식 글자로 보면 좋을 것이다. 언덕 같은 성(城)이란 말이다.

그럼 압(押)과 장(獐)의 뜻 걸림은 어떻게 풀이해야 옳을까. 누를 압(押)과 노루 장(獐)의 \'누르-노루\'에서 소리의 비슷함으로 보아 널들 혹은 느르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넓은 들 또는 졸망하게 느러져 잇다은 언덕 또는 들판이란 뜻으로 새길 수도있다. 글쓴이 보기로는,압량은 \'가장 중심이 되는 큰 들\'이란 뜻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압(押)은 \'갑\'으로도 읽는바, 압량-갑들이란 걸림을 찾아 볼수 있기 때문이다.\'갑(甲)\'이란 본디 우리말이다. 오늘날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곳이 잇으니 압량면의 감못-갑제(甲堤)가 그러한 보기라고 할수 있다.

기원적으로 감(>갑)이란 신(神)을 뜻한다. 갑제는 한자로 적었을 뿐이지 실상은 우리말이다. 신은 모든 것의 중심이었으니까 감-갑은 중심이 될 밖게.하면 신중심의 시기에 물신과 땅신의 섬기면서 여름지이를 하던 농경문화의 삶이 압량이란 땅이름 속에 베어 드러나 있음이 아닌가.

그래서인가. 세종 임금의 말미암음이라 할 이두 글자를 터놓은 설총(薛聰)이, 한국 불교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원효(元曉)가, 민족사학의기틀을 다진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스님이 여기 얍량에서 태를 묻고 진리와 겨레에 대한 길고 먼 그리움의 나라를 꿈꾸었을 것이다.
저 팔공산의 높이로, 금호강의 목마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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