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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및 유래

본디 자인군의 지역으로서 자인 읍내의 남쪽 위가 되므로 상남면이라 하여 산양(山陽)·덕촌(德村)·우검(尤儉)·연화(蓮花)·묵곡(默谷)·외사(外沙)·내사(內沙)·기곡(基谷)·평지(坪只)·흥정(興政)·안심(安心)·갈지(葛旨)·남곡(藍谷)의 13개 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통합할 적에 하남면의 강촌(江村)·가천(佳川)·조곡(早谷)·조점(早店)·송내( 內)·중리(中里)·내반(內盤)·외반(外盤)·상대(上大)·하대(下大)·남천(南川)·전지(田旨)·사월(沙月)의 13개 동리와 사동면의 경중(慶中), 경하(慶下), 구경(舊慶), 행정(杏亭)의 4개 동리를 병합하여 남쪽에 있는 대왕산과 도천산의 '산'을 따다가 남산면이라 하여 경산군에 들게 하여 18개리로 개편하여 관할하게 되었다.

동쪽은 용성면, 남쪽은 청도군 금천면과 매전면, 서쪽을 남천면과 압량면, 북쪽은 자인면에 인접하고 있다.

남산(南山),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느낌을 준다. 따뜻한 남쪽을 그리는 향수가 있음은 우리 모두 매 한가지. 남향에 동문을 낸 집에 살려면 삼대가 적선을 해야 한다는 말이 전해 오는 것을 보면 공연히 생겨난 말은 아닌 것 같다.

동쪽은 용성면, 남쪽은 청도군 금천면과 매전면, 서쪽은 남천면과 경산의 압량면, 북쪽은 자인면에 이웃하여 자리를 잡은 고장이다. 본디는 자인군의 지역으로서 자인의 위쪽이 되며 동시에 남쪽의 자리가 되므로 상남면(上南面)이라고 하였다. 1914년에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이르러 하남면(下南面)의 강촌, 가천, 조곡, 조점, 송내, 중리, 내반, 외반, 상대, 하대, 남천, 전지, 사월 마을과 상동면의 경중(慶中), 경하, 구경, 행정(杏亭) 등의 마을을 합하여 남산면이라고 부르게 된다. 뒤에 다시 경산시에 들게 된다.

특히 남쪽에 자리한 대왕산(大王山) 일명 도천산의 이름을 따서 남산이라고 하였다는데 이는 어떤 연유에서 그리 한 것일까. 대왕산의 본디 이름은 도천산(到天山)이었다고 한다. 달리 도천산은 도친산 혹은 성메되배기라고하는바, 진량의 촉초리와 안촌리 그리고 자인의 단북리를 사이하여 있는 산이기도 하다. 높이는 261미터 정도이며 성메위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남산의 앞산이 되는 셈이다. 땅이름을 보면 볕 양(陽)자가 많이 눈에 뜨인다. 남산면의 중심이라고 할 산양리 마을도 이름으로 보아 산의 북쪽으로서 산과의 걸림을 보인다.

산양리 마을은 사양이 혹은 산양리 더러는 산이라고도 일컫는다. 앞서 이른 바와 같이 자인땅 상남면의 지역이다. 넓은 들과 오목천이 감돌아 나아가는 곳으로 산양의 유래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사연인즉 남산에 있는 대왕산(大旺山), 용성의 용산, 송림의 준마산( 馬山), 쟁광의 호산(虎山)과 같은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이들 네 개의 산비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한편 산양은 임진왜란 때 중국의 고전인 시전(詩傳)에 나오는 봉명기산지양(鳳鳴其山之陽)이란 글귀에서 따왔다는 풀이도 있다. 여기 산양은 중국의 거룩한 임금으로서 알려진 문왕(文王)이 태어난 고장이기도 하다. 글쓴이 보기로는 대왕산의 산을 이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마을은 모두가 세 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다. 전해 오기로는 산이 마을은 1600년 무렵에 홍해 최씨가 개척하였다고 한다. 나머지 새각단과 솔못안이 있는데 새각단은 산이 마을 남쪽에 새로이 만들어진 곳이며, 솔못안은 새각단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저자 대구대학교 정호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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