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검색
GYEONGSAN 힘찬전진 푸른남천 남천면
  • Home
  • 우리동네
  • 지명 및 유래
  • facebook
  • twitter
  • print

지명 및 유래

남천면은 신라 시대부터 경산의 한 촌락으로서 1897년에 이르러 행정구역을 개편할 적에 남천면으로 개칭하여 현재 면소재지 삼성리를 비롯하여 12개리가 되었다. 넓이는 70.39평방 킬로미터이고 경산시의 남서쪽에 자리하였으며 경산에서 인구도 가장 적으며 인구밀도가 평방킬로미터 당 82명으로 가장 낮다.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는 남천(南川)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서 마을의 경지정리를 위한 길이 나있다. 남천의 범람원(氾濫原)에서는 복숭아와 포도 재배가 성하고 경산과 청도를 지나는 경부선 철도가 줄기차게 뻗어 있다.

경부선에서는 삼성역이 있으며 경산과 청도 사이에 남성현(南省峴) 터널이 있다.

지금은 별로지만 남천의 상류에는 한 때 백마광산이 있어 철광석을 생산하였다. 선의산에 비봉(肥峰), 연화봉(蓮花峰), 금성산의 경흥사(慶興寺), 신석동의 약수탕 등의 명승고적이 있었다.

본디 남천면은 신라 때에 장산군(獐山郡)의 남쪽 마을이었다. 첫 한글신문이 나오던 다음 해인 1897년에 경산군 남면이라고 하다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이르러 남천면이라고 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삼성리(三省里)마을을 면소재지로 하며 모두가 12개리 마을로 이루어진다. 결국 남천면은 남면에서 비롯하였다는 땅이름의 고리가 이루어진다.

산이 있으면 물이 흐르게 마련이다. 남동쪽에는 백자산(栢紫山), 용각산(龍角山), 선의산(仙義山)이 솟아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성암산(聖岩山)과 병풍산이며 동학산(動鶴山)이 드리워져 있고 다시 상원산(上院山)으로 둘러싸인 분지 모양의 고장이다. 이르자면 산이 남천면의 약 8할이 넘는다.

이 고장은 대체로 남천(南川)을 따라서 마을이 형성된다. 물길이 닿아 이루어진 논밭에는 복숭아와 포도가 풍요롭다. 때때로 굉음을 내며 가로지르는 경부선의 삼성역이 문화의 중심을 이룬다. 청도쪽과는 남성현 고개를 중심으로 경계하여 있으며 긴 기차 굴을 지나면 청도의 화양이 된다. 삼성(三省)이란 마을의 이름이 아주 교훈적이다. 하루에 자신이 한 일을 세 번 돌아보면서 인격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일일삼성오신(一日三省五身)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의 이름이 반드시 그렇게 교훈적인 것만은 아니다. 1620년 무렵 마을이 처음으로 만들어 질 때에 새로이 된 마을이라고 하여 '새태' 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다시 구석(九石)이라 하였다가 뒤에 삼성이란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전하여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어느 임금이 이 마을을 지나다 보니 말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를 아니하고 멈춰 서더라는 것이다. 사람을 시켜 자세히 살펴보니 큰 바위 아홉 개가 있어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붙여진 이름이 아홉돌 마을이라 하여 한자로 구석(九石)이 되었다고 전해 온다. 글쎄 어느 쪽이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 제대로 가늠하기가 쉽지는 않다.

물론 전설이다. 삼성리 마을에는 지석(支石) 곧 고인돌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고인돌이란 무엇인가. 잘 아시다시피 고인돌은 옛 사람들의 무덤이요, 그것도 부족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의 무덤이다. 이는 태양숭배를 문화적인 특징으로 하는 이른바 거석(巨石)문화의 상징이요, 석기시대의 장제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옛부터 이 곳 둘레에는 사람들이 살았으며 이 주위에는 지도자의 무덤을 만들어 세우는 일종의 국립묘지 같은 데는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어떠한가. 남성현 고개를 지나노라면 공원묘지들이 성을 쌓아 올린다. 죽은 이들의 영원한 안식처로 이미 예고라도 한 듯하다.

구석(九石)이란 이름은 고인돌 곧 무덤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정은 자연부락의 이름인 '큰지암'을 보아도 그럴 개연성은 있다고 본다. 큰지암의 지(芝)는 필시 지석의 지(支)를 미화하여 쓴 것이 라면 고인돌이라는 말이 된다.

앞에서 청도로 가는 남성현 아래로 긴 기차굴이 있다고 하였다. 여기는 바로 용각산과 선의산 사이에서 용마(龍馬)가 나왔다는 하도리(河圖里) 마을이 있다. 하도리 마을을 달리 굿골 혹은 구곡(龜谷)이라고 이른다. 옛말로 굴을 '굿'이라고 한다. 이로 보면 오늘날의 긴 기차굴이 생길 것을 미리 알리기라도 한 미래지향적인 땅이름이라고 하겠다. 하긴 사람의 무덤도 일종의 굴의 형상을 한 구덩이가 아닌가. 땅이름에 드러난 선인들의 슬기로움이 새롭다고 하겠다.

저자 대구대학교 정호완교수

  • 담당부서 : 남천면
  • 최종수정일 : 2021-08-05
  • 오류 및 불편신고

현재 페이지의 정보 및 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