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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및 유래

법률 제4050호(1988. 12. 31 公布)로 경산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시조례 제81호(1989. 1. 1 公布)로 설치되어 계양동, 남방동, 내동, 여천동, 유곡동, 신천동, 점촌동, 평산동, 사동, 삼풍동 등 10개 동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법정동의 유래를 살펴보면 桂陽洞은 1956년 1월 8일 경산읍 계양1동에서 분동이 되었으며 남쪽으로 ’靑魚洞안산’과 ’안산계곡’으로 겨울에는 골짜기가 얼어붙어 있어 ’빙막’이라고 하였으며, 북쪽으로 오누이가 못을 막았다는 남매지가 있으며 현재는 구획정리로 고층건물과 아파트가 밀집지역으로 동부동의 중심부를 형성하고있다.

南方洞은 1835년경 김해 김씨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조선시대 ’앞빼이’, ’앞방골’이라 불렀으며 내동의 아랫마을이라 하여 ’아래앞방’이라 하였다.

남쪽은 점촌으로부터 흐르는 하천이 있고 북쪽으로는 밑들’이라하여 경지정리후 대부분 포도밭을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는 마을의 수호신과 당신제를 지내는 당산이 있으며 당산 밑에는 현감을 지낸 한씨 비석이 있었는데 40여년전 지금의 남방교 옆으로 옮겨 놓았다.

內洞은 1500년경 해주오씨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동쪽 앞산에 큰바위가 있다하여 ’알방골’, ’아방’이라 불렀다. 남방동의 안쪽이라 ‘안골’또는 ‘內谷里’라 부르다가 행정구역개편으로 내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북쪽으로 찬샘이 있는데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샘이 깊으며 당산에는 수백년된 동신지나무(고염나무)의 둘레가 3m나 되는 것으로 마을의 수호신이다

麗川洞은 1840년경 밀양박씨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어 ’버드네’ ’유등천’ ’유천’으로 부르다가 여천으로 불렀다.

마을의 남쪽으로 삼성산의 남산봉에서 설총이 성장하여 공부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삼성산 밑에서 원효, 설총, 일연 등 성인이 탄생한 곳이라 하여 일제 때 산허리를 잘라 놓았다.

油谷洞은 단양 우씨들이 집성으로 살았던 마을로 물이 기름처럼 귀하다하여 기름골(由谷)이라 하였다. 남쪽으로 삼성산 산하 ’서당갓꽃밭디’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 샘터가 있다. 마을뒷산 골짜기에는 설총선생이 태어났다는 佛堂谷이 있으며 원효사와 총금사 두 사찰이 있다.

信川洞은 경산 - 자인간 지방도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남쪽으로 대부분의 주택이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 ’까치밭골’에는 계명대학교 농장이 있으며 메노나이트라는 고아원이 있었으며 지금은 뇌성마비 등 장애자를 수용하는 사회복지시설 ’성낙원’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중심부의 ’뱃귀새미’는 이름난 샘이었으며 온돌방 구들장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坪山洞은 1700년경 경주이씨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마을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들뫼’’평산’이라고 불렀다. 서쪽으로 대구미래대학이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은 선돌이 있어 선돌뱅이로 불려지고 있으며 남쪽 대원산에는 일제때 코발트를 채굴한 광산이 있었다. 또한 경산과 자인간의 줄다리기를 한곳으로 알려지는 ’비들재’ 는 줄이 늘어나 진둥이라고도 하였다.

店村洞은 경주이씨가 맨처음 정착하였다고 전해지며 옹기마을이 있다하여 점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 남쪽은 현성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산 중턱에 경산대학교가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 야산에는 복숭아 밭이 넓게 자리하고있으며 사람의 왕래가 없어 부엉이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라하여 ’붕더미’라 부르기도 하였다.

巳洞은 1700년경 교하노씨가 마을 개척하였고 지형이 뱀의 형상과 닮았다하여 뱀골이라 하였다. 남쪽과 서쪽으로 산이 가로막혀 있고 그 아래 말매못안(馬官池)에는 말에게 물을 먹인 곳으로 알려지고있으며 마을 뒷산에는 삼형제바위가 있어 공을 드리면 득남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에는 3개의 서당과 달마원, 사찰등이있다. 지금은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으로 고층아파트와 빌라 등이 들어서 있으며 계속하여 개발이 진행중이다.

三豊洞은 1600년경 영일 정씨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옛날3000석을 한 부자가 있어 삼천동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12개의 뜸이 있었다. ’율정골’, ’갑골’ 등지에 여우가 울면 상사가 일고 마을입구에 울면 음식이 생기고 ’밤지’에 울면 도둑을 맞는다고 하였다. 마을 앞에는 수령이 1000년정도되는 마을의 수호신인 동신지나무(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다. 지금은 택지개발로 고층아파트와 빌라, 상가가 밀집해 있다.

저자 대구대학교 정호완교수

  • 담당부서 : 동부동
  • 최종수정일 : 202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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