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명 및 유래

서부1동은 경산시의 서극에 자리 잡은 지역으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에 의거 경산읍이 경산시로 승격됨에 따라 당시 경산읍의 옥곡1동, 옥곡2동, 사정1동, 사정2동, 옥산동, 중산동, 정평동을 편입하여 서부동으로 개칭한 후 1995년 1월 1일 경산시와 군이 도농통합됨에 따라 통합 경산시 서부동으로 개칭되었으며, 2004년 10월 18일 서부1동, 서부2동으로 분리되었다.

옥곡동은 현 경산역 일대와 경산역에서 남쪽으로 철길의 서쪽 산기슭에 자리한 마을이다. 이 마을의 동쪽에는 "옥실들"이라는 넓은 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옛날에는 이 들 때문에 다른 마을에 비하여 비교적 풍요한 마을이었으나 철로가 마을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농사에 지장을 받아 현재까지 농가 소득에 큰 애로를 격이고 있다.

또한 넓은 들에 비해 농업 용수가 부족하여 별도의 옥곡보를 막아 이를 이용하고 있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전 초계정씨 삼형제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이들 삼형제가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의 충절을 기려 후손들이 삼의정 이라는 제당을 짓고 조상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이 마을에 전하는 전설로는 "영동당"과 효자각에 대한 전설이 남아있다. 영동당은 마을의 남쪽 구일리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길가에 있는데 동래부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당을 불태우자 그 재가 지금의 "영동당"이 있는 남천면 송백리에 내려앉았다고 한다. "효자각"에 얽힌 전설로는 옛날 어느 집에 불이 나자 그 집 며느리가 자기 아들을 먼저 구하지 않고 시어머니를 먼저 구하고 죽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를 기려 "효자각"을 세웠다고 한다. 이 밖에도 옛 선인들이 남겨 놓은 지명과 설화는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정동은 경산역 서쪽 성암산 아래 마을로 유적지로는 수정사, 충혼탑, 경산시민헌장비가 있다.

이 마을에서 성암산으로 오르는 7부 능선에는 성암굴 "범굴"이라 부르는 석굴이 남아 있다. 이 석굴은 고려 공민왕 2년 경산향교가 옥곡동에 창건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화를 당하게 되자 향교의 수복인 강개명이란 분이 오 성인의 위패를 이 굴로 옮겨 병화를 면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산동은 조선시대 말기 당시 경산군 읍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당시 일제의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옥산동이 되어, 경산면에 편입되다가 1956년 7월 경산면이 읍으로 승격, 경산면 옥산동이 경산읍 옥산동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988년 5월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여 잠시 옥산리로 바뀌어졌다가 이듬해인 1989년 1월 1일 옥산리 관할을 두고 있던 구 경산읍 일대를 경산시로 승격하게 되어 옥산리는 다시 옥산동으로 회귀되었다

현재 페이지의 정보 및 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평가